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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Dec 10. 2021

취향껏 디깅해보는 바이닐 벼룩시장

용산전자랜드 LP벼룩마켓을 다녀오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으로 다양한 행사 소식을 접한다. 생판 몰랐던 용산전자랜드 LP벼룩마켓도 ‘홍대널판’이라는 바이닐 셀러의 인스타 포스팅으로 알게 되었다. 11월 27일, 28일 양일간 진행되는 행사로 나는 두 번째날 오후 1시50분쯤 행사장인 용산 전자랜드에 도착했다.     



2층에 올라가보니 대략 15~20 개 정도의 작은 부스가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벼룩시장 형태로 바이닐을 만나는건 처음이라 신기한 기분. ‘홍대널판’, ‘피터판’, ‘미오레코드’같이 반가운 얼굴부터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타크리팀’처럼 처음 마주하는 이들까지. 셀러들의 각양각색 성향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접하기 힘든 유럽 음반을 가져다 타크리팀은 한국말을 잘해 음반 설명에 무리가 없었다. 재즈계의 명가 레이블 블루 노트의 음반을 다량 구비해 구미를 당긴 ‘산도발블루노트’. 주인 아저씨가 음반에 관심을 보이는 청년에게 ‘재즈 음반 레이블이 여럿 있지만 이왕 살거면 블루노트껄로 사야지~’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법 고가였지만 국내에서의 희소성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이해 불가한 가격은 아니었다.      



피터판 아저씨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늘 친절한 얼굴로 맞아주시는 분이다. 쑥 훑어보니 당기는 음반이 없어서 아쉽지만 금방 빠져나왔다. 자연스레 시선은 옆에 있는 ‘핑크판스’에게로. 이름부터 재밌는 이 부스엔 희귀한 사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 음반이 여럿 보였다.     


눈에 확 들어온 이태리 뮤지션 루치오 바티스티... 아! 가을날의 숱한 산책길을 적셔주었던 그 이름. 많은 명작들 가운데 특히 사랑하는 <Umanamente uomo: il sogno>가 보였고 2만원으로 가격도 착했다. 시완레코드에서 발매했다고. 기억이 선명치 않지만 아무래도 <Amore e non amore>로 사료되는 음반도 있었다.(재킷 상태는 별로였지만 유럽반!) 이것도 2만원리라길래, ‘이 두 장만 건져도 오늘은 복 받은 날이야!’라고 속삭였다.     



바로 지갑을 열었어야 했다. ‘누가 바티스티 음반을 집어가겠어, 그것도 몇 분 사이에’라는 오만함이 화근이었다. 잠시 다른데를 구경하는 사이에 머리를 질끈 묶은 중년 남성이 ‘핑크판스’에서 대량구매를 하고 있었고 나의 <Umanamente uomo: il sogno>도 테이블 한 구석에 올라 있었다. 가슴에 흐르는 눈물. 어쩔소냐.  

    

안녕. 언젠가 더 상태 좋은 녀석이 눈 앞에 나오길 고대하며. 안녕.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바이닐을 들고온 ‘홍대널판’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사이키델릭 섹션을 보다가 브라질의 전설적인 뮤지션 가우 코스타(Gal Costa)의 이름을 발견했다. 최근 이승열의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음악기행>에서 그녀의 음성을 듣고 넋이 나갔다. 일본 프레싱이여서 커버가 달랐지만 상태는 민트에 가까워 보였다. 5만원이란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언제 또 코스타의 음반을 만나겠냐는 마음에 구매를 결정. 잘 모르는 음반은 종종 위키피디아나 Discogs의 도움을 받는데, ‘롤링스톤이 뽑은 역대 최고의 브라질 앨범 20위에 선정되었다’라는 문구에 끌린 것도 사실이다.         

 


오후 3시, 대망의 경품 추천 시간이 다가왔다. 특정 부스에서 5만원어치 이상을 구매하면 쿠폰 한 장을 주고 그 쿠폰으로 경품 추첨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가우 코스타의 음반 한 장으로 요건을 충족, 887번 쿠폰을 뽑기함에 넣었다. 혹시 지난 글을 읽었다면 마포바이닐페스타에서 의 특급 운을 기억할 것이다. 과연 이번에도 기적이 이어질는지?     


두근두근.     


5등에 해당하는 카본브러쉬와 lp 클리너가 지나고 빛과 소금, 김추자 등 가요 리이슈반 당첨자가 하나 둘 호명되었다. 내 이름, 아니 번호는 불리지 않는다. 애타는 마음. 버스커 버스커 바이닐 순서가 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인기 많은 음반인가 보다. 머리가 긴 거구의 남성은 벌써 두 장의 바이닐이 당첨되었다. 운이란게 참. 야속하다. 50만원 이상을 썼다는 벼룩마켓 셀러는 결국 1등 상품인 턴테이블을 차지하며 투자효과를 맛봤다.      


설렘과 긴장의 시간이 끝났다. 당첨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호명의 순간을 기다리는 두근거림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후 3시에 진행된 경품 추첨 후에도 장은 계속되었지만 더 있다간 지갑이 구멍날 것 같아 전자상가를 빠져나왔다.     


용산 LP벼룩마켓은 매달 마지막주 토/일에 걸쳐 열린다고 한다. 참가 셀러도 매달 조금씩 바뀐다고. 셀러의 다채로운 취향과 떨리는 경품 추첨, (상황에 따라서) 착한 가격 등 바이닐 마니아를 유혹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춘 행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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